오펜하이머는 지금도 박스오피스 22일째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적 관객수는 279만 명입니다. 입소문에 그래도 재밌다는 평도 있고 조금 길다는 평도 있지만 그래도 본사람들은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직 저는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역사를 알고 오펜하이머를 보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를 봤던 분도 안 봤던 분들도 더 과몰입할 수 있는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학문이 양자역학입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시" 세계의 현상을 다루는 양자역학입니다. 영화에서도 오펜하이머가 그것으로 플러팅을 하는 게 나옵니다.
오펜하이머 내용이라 재밌습니다. 과몰입 해보세요
1. 오펜하이머 인기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강의 하던 시절의 오펜하이머는 정말로 인물도 잘생겼습니다. 캠퍼스 내에서도 인기가 매우 많았다고 합니다. 오펜하이머 룩이 있을 정도로 일명 지니어스 룩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학생들이 따라 할 정도로 지적으로 보였나 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위기?
"말씀하신 곳으로 돈 보냈습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굉장히 빠르게 어디론가 향했습니다.
" 무사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이때 독일 분위기가 굉장히 이상하게 흘러갔습니다. 아주 위험한 인물이 독일에서 권력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였습니다. 나치 독일의 시대가 된 겁니다. 오펜하이머 같은 경우는 독일계 이민자 2세이자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독일에 남아 있던 가족과 친구들이 다 독일에 있던 상황입니다. 오펜하이머가 은밀하게 도움을 주고 있던 상황입니다.
2. 유대인 대학살
그 당시 유대인 대학살뿐만 아니라 나치의 18,000여 권의 서적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거기엔 아인슈타인이라는 위대한 과학자가 쓴 책도 있었다고 합니다. 홀로코스트의 위험이 점점 다가오는데 생명의 위협을 느낀 아인슈타인과 유대인 과학자들은 탈출을 해서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국이 과학의 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되었죠.
그리고 물리학계가 발칵 뒤집힌 소식이 있었습니다. 물질의 최소 단위는 원자입니다. 그런데 원자가 쪼개질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발견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심각해진 오펜하이머. 원자가 쪼개지며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방출하게 됩니다. 기존 폭탄보다 수천 배 강력한 살상무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서운 것이 전 세계 과학자들이 이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루스벨트 대통령이 드디어 미국 육군에 지시를 내립니다. 핵폭탄 프로젝트를 착수해라라고 말입니다. 드디어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이 됩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핵에너지를 군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위원회를 조직하라고 명령하였고 1942년 9월 맨해튼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오펜하이머에게 맨해튼 프로젝트 과학 총책임자를 제안합니다.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제치고 왜 하필 오펜하이머에게 제안을 했을까요? 그로브스가 찾았던 게 젊은 학생들 있잖아요. 팍팍 튀는 생각을 가진 그 학생들이 푹 빠져들 수 있는 그런 교수를 찾았던 겁니다. 그게 바로 오펜하이머였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정말 따분했다고 합니다. 근데 그로브스는 그게 아니고 매력을 본 겁니다. 사람들을 끌어갈 수 있는 매력을 말이죠.
오지에 모두 집합시키는 것부터 오펜하이머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렇게 마침내 모두 모인 과학계 어벤저스입니다. 로스 앨러모스라고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지대에 위치한 최초의 핵폭탄 연구단지에서 시작했습니다. 사막에 집합된 천재들은 핵폭탄을 만들 때까지 기약 없이 계속 있어야 했습니다.
국가 기밀 프로젝트인 만큼 감시와 도청까지 이루어졌던 상황입니다. 그 당시 팻말을 보면 침묵은 안전이다 , 당신의 펜과 혀가 적군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이런 문구들이 많았지요.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184cm 키인데 50kg까지 빠졌다고 합니다. 맨해튼 프로젝트 초기 예상 비용은 약 80억 원 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60만 명이 넘는 관계자가 참여를 하게 됩니다. 초반에 약 80억 원을 예산을 잡았지만 실제 지출은 약 40조 원이었다고 합니다. 프로젝트 성공에 대한 엄청난 부담감을 느낌 오펜하이머입니다. 핵폭탄 제조에 필요한 우라늄이 충분하게 만들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합니다.
우라늄의 순도를 높여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재료 확보를 위해 미국의 전력 4분의 1을 써도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다행히 다른 재료 플루토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재료가 바뀌니 기존 방식이 잘 통하지가 않습니다. 플루토늄을 가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설을 추가로 지어야 합니다. 이미 40조 가까이 썼는데 말이죠.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한 과학자가 폭발 설계 방식을 새롭게 제안합니다. 총신형이 아닌 내파형으로 제안을 합니다. 내부로 폭발 시키는 방식입니다. 내파형 설계 방식도 모두 수기로 계산합니다. 그 당시에는 컴퓨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독일 라디오에서 히틀러의 사망소식이 들려옵니다. 곧이어 나치 독일의 무조건 항복이 있었습니다. 핵폭탄을 만든 이유가 히틀러 때문인데 히틀러가 죽었으니 프로젝트는 무산되었을까요? 그런데 계속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또 다른 주범이 일본이었습니다. 예전에 영화로도 나왔지만 진주만 공습이 이어졌습니다. 일본 항공기가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 사건입니다. 그때 오펜하이머는 우리에게 여전히 일본과의 전쟁이 남아있어.
3.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1945년 8월 3일 이후 날씨가 허락하는 대로 폭탄을 투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투하 위치는 군수 공장이 많은 도시 히로시마였습니다. 그래서 인류 최초의 핵무기를 실은 전투기 한 대가 히로시마 상공을 향해 날아가고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4분 폭탄이 투하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핵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졌습니다. 첫 번째도 항복을 하지 않았고 두 번째 폭탄까지 투하가 되고 나서야 항복 선언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광복이 찾아오게 됩니다. 오펜하이머가 그토록 바라던 전쟁이 끝이 나게 됩니다.
공식 사망자수만 21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핵폭탄 피해국 세계 1위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두려워할 강력한 무기가 있으니 이제는 전쟁은 불가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데 예상보다 빠르게 소련이 핵무기를 만드는데 성공을 하게 됩니다. 그 이후로 미국과 소련이 이제 경쟁적으로 핵무기를 만들기 시작을 합니다. 그야말로 핵폭탄이 종전의 상징이 아니라 냉전의 1막의 시작입니다. 그 이후로 수소폭탄을 개발하기로 한 미국입니다. 히로시마에 투하한 것보다 500배라고 합니다.
핵폭탄의 핵심정보를 소련에 넘겼다는 의혹까지 받게 됩니다. 하지만 오펜하이머가 스파이라는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68년 만에 오명에서 벗어난 오펜하이머 억울할 만도 합니다. 핵폭탄보다 강력한 무기는 평화입니다. 늘 옳은 선택을 내릴 수는 없지만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건 선택하는 용기입니다. 오펜하이머 영화 보러 가봐야겠네요. 그 결정결정의 순간마다 정말로 스트레스 엄청났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