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여행지는 629년 전 1394년으로 출발합니다. 1394년도 많은 일이 있던 해입니다. 이성계 시대의 이인자이자 조선 개국 일등 공신 정도전 둘은 무슨 관계였을까요? 태종 이성계의 오른팔이 정도전이었고, 태종 이방원의 오른팔은 하륜이었습니다. 정도전은 태조를 , 하륜은 태종을 왕으로 만든 킹메이커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륜과 정도전의 사이는 어땠을까요? 이방원과 이성계는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인자들도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하륜이 정도전의 죽음에 일조하며 완전히 틀어진 두 사람입니다.
1365년 고려 공민왕 시기
수많은 응시생 중에서 마음을 졸이며 답안지를 적는 19살 청년이 있었습니다. 신중하게 답안지를 쭉 써 내려간 청년이 있었으니 바로 하륜이었습니다. 하륜은 수도 개경에서 한참을 떨어진 경상도 진주 출신이었습니다. 하륜집안은 명문집안은 아니었고 집안에서 마지막으로 문과에 급제한 인물이 하륜의 고조할아버지였습니다. 이 집안은 출세하고 거리가 먼 한미한 가문이었던 겁니다. 이런 집안에서 자란 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 것 같으세요? 하륜은 포부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중앙 정계에서 크게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과거에 급제를 하게 됩니다. 그 당시는 좌주(시험주관)를 중심으로 문생들은 하나의 목표의 그룹을 형성하게 됩니다. 하륜의 좌주는 이인복이었습니다. 이인복은 고려 정계의 핵심세력 권문세족 출신이자 공민왕의 최측근이었습니다. 이 권력에 중심에 있던 이인복의 문생이 된 하륜은 아주 특별한 관계가 됩니다.
태종실록을 보면 "이인복이 한번 보고 기이하게 여기어 그 아우의 딸로 아내를 삼게 하였다." 풀이하자면 하륜에게서 특별함을 느껴서 조카와 혼인을 주선하였습니다. 이로 인해서 조카사위가 되어버린 겁니다. 아마도 평소 책 읽기를 좋아하고 매사에 진중했던 것을 좋게 본 것 같습니다.
어떤 기회가 주어졌을지?
당대 최고 가문인 성주 이 씨의 사위가 된 것은 엄청난 힘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한미한 가문 출신이 중앙 관직에서 출세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은 완전 인생 역전의 기회를 얻은 셈입니다. 그런데 이인복 외에 또 한 명의 좌주가 있었으니 그분은 바로 성리학의 대부 이색이었습니다. 이색은 대학 총장 격인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했던 뛰어난 유학자입니다. 이색은 젊은 유생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쳤습니다.
뛰어난 학자인 이색에게 성리학을 배우려는 유생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스타강사 일타강사 정도 될 수도 있겠네요. 이색의 제자들은 활발하게 과거를 통해서 정계에 진출하게 됩니다. 부패한 권문세족을 비판하면서 결집한 세력이 있었으니 이색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신진사대부)
이색은 신진사대부의 학문적 정신적 지주였던 겁니다. 하륜은 학문적 토대 이색과 , 정치적 후원자 이인복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인복은 권문세족이고 , 이색은 신진사대부 계열입니다. 서로 상반되는 사람들입니다. 스승 이색 아래 만나게 된 인생 최대의 인연이 바로 신진사대부 정도전이었습니다.
정도전 위치
하륜이 급제할 당시에 정도전은 정 7품 관직을 지내고 있었고 정계에서 아주 주목받고 있는 신진사대부였습니다. 학문가 정치를 논하며 둘은 가까워졌습니다. 21세 하륜은 드디어 중앙 정계에 진출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이후 1374년 9월 고려가 발칵 뒤집은 일이 있었는데 당시 왕이었던 공민왕이 침전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됩니다. 공민왕의 죽음으로 고려에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공식적 세라를 책봉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 공민왕이어서 다음왕으로 누구를 앉힐까 고민이 많았을 겁니다. 이인임이 나이 어린 우왕을 왕으로 앉혔습니다.
공민왕의 최측근으로 조정 내의 최고의 신하였던 이인임이 있었습니다. 우왕을 앞세워 고려의 모든 권력을 이인임이 장악을 하였습니다. 이인임이 장악한 고려에서 신하들에게 부러움을 산 인물이 있었으니 그분은 바로
이인복의 사위이자 실세 이인임의 조카사위 하륜이 엄청나게 신하들에게 부러움을 사고 있었습니다. 실세 이인임 아래 하륜의 출셋길은 탄탄대로가 펼쳐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정도전은 이인임에 눈밖에 나고 있었습니다. 이인임이 득세하던 1375년에 원나라에서 사신이 옵니다. 이때 사신을 맞으라는 명령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때 정도전은 나는 원 사신을 죽이거나 명나라로 보내버리겠다고 거부하였습니다.
정도전은 왜 원나라 사신을 거부했을까요? 이것은 당시 권문세족들과 신진사대부관의 외교 노선 차이로 벌어진 문제였습니다. 권문세족의 실세 이인임은 원나라와도 우호관계를 이라는 주장이 있었고 , 신진사대부는 원나라와는 결코 가까워질 수 없다. 이런 마인드였습니다. 그 당시 최고의 세력이 이인임 이었으니 결국 정도전은 유배를 가게 됩니다.
이때부터 하륜과 정도전은 운명이 바뀌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하급관리여서 정도전을 챙길 여력도 안되었습니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겁니다.
옥경으로 돌아가는 임 보내나니
구름 끝의 저 달을 임께 주노라
...
달을 보면 행여 서로 생각하세
→ 정도전이 하륜에게 보낸 편지, 옥경 : 왕이 있는 서울 , 개경을 비유
8년 후 1383년 고려
정도전은 긴 시간을 비주류로 지내면서 정계 밖을 떠돌아야만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고려를 완전히 뜯어고칠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이성계 장군과 함께 고려를 바꾸기로 하였습니다. 이성계와 손잡고 1년 후 정도전은 중앙정계로 다시 복귀합니다. 당시 명나라와의 외교에 정도전은 필수 인재였기 때문에 받아주었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앙정계로 왔을 당시에 38세 하륜은 정 3품 관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도전 또한 종 4품 전교부령 중책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고려의 실권자 이인임이 갑자기 유배를 가게 됩니다. 이인임이 아파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 일파들이 부정부패를 저지르게 됩니다.
이성계와 최영에 의해 권문세족 일가는 다 죽습니다. 하륜 또한 곤장을 맞고 유배를 가게 됩니다. 이인임 가문의 사람이다라고 생각해서 유배를 보냈던 것입니다. 1388년 고려를 완전히 뒤흔든 사건이 있었으니 위화도 회군입니다. 고려 조정을 장악하고 창왕을 왕으로 세운 이성계입니다. 이성계의 오른팔 정도전은 위상이 승승장구였습니다. 하륜은 유배생활을 정도전은 권력의 중심에 또다시 이렇게 뒤바뀌었으니 정말 재밌습니다.
유배지에서 사망한 이인임 관련 인물들이 면죄를 받게 되면서 하륜은 복귀명령이 떨어집니다. 그 당시 근데 신진사대부들도 나뉘게 됩니다. 고려는 두되 폐단만 고칩시다 하는 온건 개혁파, 왕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급진개혁파 이렇게 나뉘었습니다. 그런데 하륜은 스승이 있던 이색이 온건 개혁파라서 거기로 따라가게 됩니다.
하륜은 정도전을 배어버리고 하루 만에 정도전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정말 하륜은 신하로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오직 태종을 위해 헌신했던 조력자였습니다. 고위직에 오래 있었지만 자신의 세력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종도 끝까지 믿어 줬다고 생각합니다. 벌거벗은 한국사 이번이야기도 정말 재미있기는 합니다. 역사 사극은 정말로 그 시대를 알고 보면 더 재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