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출신 독일 유학파 첼리스트 도완녀 씨는 법정 스님 애제자이자 송광사 학승 돈연 스님과 세기의 결혼을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촉망받던 학승 ♥ 독일 유학파 첼리스트는 16년 만에 재회해서 산골서 새 인생을 살았습니다. 서로가 스승이자 친구인 스님 부부입니다. 두 분은 결혼 이후에 수십억 원대 무공해 된장 사업가로 변신하였습니다.
어느 순간 세상과 멀어져 있었습니다. 산에 들어가서 산다는 것은 보통 결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도완녀 씨는 첼로를 연주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논문 쓴다고 3년 첼로 연주를 못했는데 자연 속에서 에너지를 받고 다시 음악 공부를 시작해야 되겠다 라는 생각으로 바위에서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도완녀
도완녀씨는 예전에 복벽 탈장이 생겨 내장이 몸 밖으로 돌출된 적도 있고 , 자궁암에 걸려서 자궁 제거 수술도 했다고 합니다. 전신 마취만 일곱 번 할 정도라서 엄청 고통 속에서 살았다고 해요. 그리고 경영하던 회사의 모든 땅과 재산들이 다 경매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정말로 쌀을 살 돈이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합니다.
도완녀 씨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운명은 바로 "신내림"입니다. 정말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도완녀 씨의 이야기 입니다. 서울 토박이 였던 그녀가 강원도 정선군에 정착을 했다고 합니다. 강원도 정선에는 1993년도에 시집을 와서 2003년도에 남편인 돈연 스님이 지어준 집입니다.
남편인 돈연스님은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부처님 말씀을 한글로 아주 쉽게 번역하는 작업을 평생 하였다고 합니다. 도완녀씨의 남편은 송광사 학승이자 <현대시학>을 통해 정식 등단한 돈연 스님입니다. 특히나 법정 스님의 애제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77년 독일문화원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입니다. 그렇게 스쳐 지나갔던 인연은 16년 만에 재회를 했다고 합니다. 서로 편지로 왔다 갔다 교류를 했다고 합니다.
세기의 결혼
사실 잘 나가던 첼리스트가 스님과 결혼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돈연 스님이 전국의 사찰을 돌아다니면서 "나 이 여자랑 결혼할 것이다"라고 하니까 처음에는 스님들이 다 도완녀 씨를 똑바로 안 쳐다보고 외면했다고 합니다. 주례사님도 말하기를 "다시는 이와 같은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결혼식을 하기 직전까지도 스님들이 이 결혼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뜯어말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우려 어린 주변의 시선에도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삼 남매를 낳아 기르면서 정선에 정착을 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친환경 된장 사업으로 성공적인 사업가로 변신했습니다. 고급호텔, 청와대에서도 여기 된장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된장이 홈쇼핑으로도 성공하였다고 합니다. 연매출이 60억 정도 나왔다고 하니까 대단하기는 합니다. 된장을 팔아서 60억 원을 번다는 것은 꽤 많이 판 것입니다.
지금은 무속인이 되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어떻게 보면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돈연 스님은 작년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돈연스님은 매화나무를 좋아하셔서 매화나무 밑에 유골을 묻어 드렸다고 합니다. 영원한 이별을 한 인생의 동반자였던 두 사람입니다.
남편인 돈연스님은 뇌경색 당뇨 고혈압이 한꺼번에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12년 동안 투병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정말로 힘든 투병생활 이었을 겁니다.
그래도 이렇게 삼 남매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서 뿌듯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삼남매 앞에서 그래도 첼로 연주를 들려주면서 막을 내립니다. 정말로 도완녀 씨는 지금 제2의 인생을 사는 것 같습니다. 인생 길게 보고 하고 싶은 것이 있고 , 원하는 것이 있다면 다 해보고 끝내야 합니다.
김대범 공황장애 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