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아 보이는 1cm , 때로는 엄청난 일들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 꼬꼬무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간절했던 1cm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cm가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꿨습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39년 전 , 1984년 9월 서울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이때 우리나라의 분위기는 아주 들떠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LA올림픽에서 금메달을 6개를 획득하였습니다. 종합순위 세계 10위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때 대한 유도학교가 있었는데 지금은 용인 대학교입니다. 이 학교에서 유도 금메달 리스트가 나온 겁니다. 그래서 대한 유도학교에서는 잔치 분위기였습니다.
1. 메달을 꿈꾸는 학생들 가득
그런데 1984년 9월 1일 토요일 아침 훈련시간에 맞춰 눈을 뜬 호룡이는 깜짝놀랐습니다. 밤사이에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더니 1층까지 잠긴 학교 본관 건물을 보게 됩니다. 학교 입구에서 운동장까지 걸어 들어올 때는 발목정도가 물이 찰랑찰랑 했었는데 30~40분 사이에 정강이 있는 곳까지 물이 올라왔습니다. 이때 물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차츰차츰 밀려오더니 순식간에 물에 잠기는 건물들을 계속 보게 됩니다.
현재는 호우 경보 발령기준 3시간 강우량이 90mm 이상이 예상될때 내리지만 , 1984년에는 호우경보 기준이 24시간 강우량이 150mm 이상이 예상될 때 호우경보를 내립니다. 오전 6시부터 시간당 강우량이 40mm 넘어섰습니다. 시간당 40mm 내리면 앞을 보기가 힘든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때가 9월인데 장마도 지났는데 비가 많이 온 이유는 태풍 때문이었습니다. 12호 태풍 "준" 우리나라를 지나가면서 많은 비를 뿌린 겁니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2시가 되었습니다. 당시 국립의료원 외과 레지던트 장윤철 씨는 오전 근무만 하고 퇴근을 했는데 라디오에서 속보가 흘러나옵니다. 한강 유역에 홍수주의보가 발효되었다고 합니다. 많은 비로 하천이 범람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장윤철 씨는 걱정은 했지만 다행히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집근처 도로가 꽉 막혀버린 겁니다. 저 앞에 보이는 차들 바퀴가 물에 잠기고 있었습니다. 윤철 씨 차 아래도 물이 계속 차올랐습니다. 차는 갓길에 밀어 두고 걷기 시작했는데 , 그런데 동네에 들어서자 이미 물바다가 된 것입니다. 불어난 물에 동네가 난리가 난 것입니다.
2. 성내동 성내천
성내동이 침수이유는 저지대라 침수에 취약한데 집중호우로 인해서 성내천이 범람하였습니다. 같은 시각 서울곳곳에서 침수피해가 속출을 하게됩니다. 망원동 방배동 신정동 할 것 없이 전부 물난리였습니다. 관련기관 중 특히 눈코 뜰 새 없는 기관이 있었으니 한강 홍수 통제소입니다. 이곳은 한강 유역의 홍수통제 및 홍수 예보. 경보와 수문조사 및 관측을 담당하는 기관입니다.
이때 서울지역에서만 41명의 아까운 생명이 사라져갔습니다. 화재는 재라도 남지만 물은 흔적도 안 남습니다. 특히나 하천을 끼고 있는 망원동 풍납동 성내동이 피해가 집중되었습니다. 39년 전 일이라 반지하 주택도 많았고 배수시설도 안되던 그때였습니다. 그때 서울의 운명은 소양강 댐에 달렸습니다. 소양강댐은 규모가 어마어마했고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큽니다. 여기서는 수도권 전 지역에 물과 전기를 공급합니다. 그리고 소양강댐은 홍수조절까지 합니다.
한강 상류에서 물을 가둬둠으로써 하류인 수도권의 홍수피해를 줄이는겁니다. 그런데 춘천에서도 폭우가 쏟아져서 모두가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비가 오게 되면 가두고 있는 물의 양도 늘어나니까 엄청난 고민을 했을 겁니다. 상류에서 흘러든 물로 인해 계속 높아지는 소양강 댐 수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물 29억톤은 서울월드컵 경기장을 600개나 채울 수 있는 양입니다. 수도권 시민들이 1년 이상 쓰고도 남은 정도의 물입니다. 소양강 댐 정상이 해발 203m인데 , 평상시 제한 수위는 193.5m입니다. 1984년 9월 1일 오후 3시에는 소양강댐 수위는 188.52m입니다. 홍수기 제한 수위에 거의 육박할 정도로 물이 차올랐습니다. 소양강 댐을 열게 되면 서울은 물바다가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정말 이때는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소양강댐뿐이었습니다.
한강홍수통제소에서는 방류를 최대한 미루고 버텨주세요. 단 한방울의 물도 흘려보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오후 5시가 되자 소양강댐 수위는 189.9m가 되었습니다.
3. 급박한 상황
오후 5시 1~5번 수문이 최대개방이 되었습니다. 5개의 수문을 통해 초당 5,5500톤씩 물이 빠져나갔습니다. 그런데 수문을 다 풀로 오픈한 상태인데도 수위가 떨어지지 않고 수위가 상승했다고 합니다. 수위가 198m를 넘으면 정말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그때 1cm씩 점점 수위가 내려가는 것 보고 환호를 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물은 발전소로 고립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분들은 2일동안 잠도 못 자고 사력을 다했을 겁니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었다 생각을 합니다. 그때 물을 끓일 수도 없어서 오드득 오드득 부숴먹었던 생라면이 그렇게 맛있었다고 합니다. 이틀 동안 굶고 먹던 생라면은 정말 대단했다고 합니다.
수재의연금 모금도 이어졌고 위기의 순간 다들 한마음으로 도와줬습니다. 소양강댐도 100일만에 모든 것을 보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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